목양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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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종교개혁지를 탐방하면서 칼뱅을 중심으로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왔고, 또 칼뱅의 생애 동안 그의 목회와 신학의 현장들을 보면서 감동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흔적들 중에서 가장 가슴이 먹먹하고, 감정을 울컥하게 했던 곳은 칼뱅의 무덤이었습니다. 아내보다 몇 걸음 먼저 도착해서 칼뱅의 무덤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습니다. 아내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눈물을 훔칩니다. 칼뱅가가 있는 언덕 길 골목들을 지나서 다시 제네바 시내 평지에 이르러 한참을 걸으면 시내 한복판에 제네바 왕립묘지Cimetiere des Rois라는 공원묘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시내에 있지만 참 차분하고 조용한 풍경입니다.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왕립’이기 때문에 예전 왕정시대부터 제네바와 스위스 역사 속에서 꽤 유명했던 분들이 안장된 묘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5세기부터 조성된 묘원인데, 이곳에는 정부 수반이었던 분을 비롯해 외교관, 과학자, 철학자, 예술가, 장군 등 국가의 중요한 인물들이 이곳에 묻혔습니다. 이 왕립묘지 707호가 바로 칼뱅의 무덤입니다.
칼뱅은 5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자신의 장례를 가장 검소하게 치르도록 유언을 했습니다. 심지어 장례를 집전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해서 교인들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이가 많았습니다. 무덤에는 묘비를 세우지 못하도록 엄하게 유언했기 때문에 한동안은 칼뱅의 묘가 어떤 것인지 찾지를 못하기도 했습니다. JC라는 이니셜을 찾아서 그곳이 칼뱅의 묘인 것을 알게 되었고, 1999년에 지금처럼 단장을 했습니다. 단장했다고 하지만 이 묘원에서 지금도 가장 검소한 무덤의 형태입니다.
이마저도 칼뱅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단장하는 것을 반대해서 재판을 걸었던 사람도 있는데, 스위스 법원은 돌아가신지 수백 년 된 분의 뜻을 확인할 수 없다는 애매한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칼뱅의 무덤 앞에 섰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서 제네바에서 목회를 하고, 또 종교개혁 과정에 갈등이 있어서 제네바에서 추방되어 스트라스부르에 가기도 했고, 다시 제네바에 복귀하여 목회와 개혁과 신학적인 작업을 하지만 초반 10여년은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다가 죽은 후에도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 삶을 살았습니다. 묘소를 단장하면서 만든 안내문에는 칼뱅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칼뱅은 제네바를 개혁교회의 모델 도시로 만들기를 원했으며 그곳에서 엄격한 규율을 확립했다.” 칼뱅의 삶의 모습이 무덤에 그렇게 그대로 반영이 되었습니다.
칼뱅의 무덤 앞에서 기도하면서 참 많은 생각들을 했습니다. 나는 칼뱅의 후예답게 살고 있는가, 우리 교회는 칼뱅이 가르쳐준 개혁된 장로교회의 모습을 갖고 있는가, 반성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 아니 한국 교회의 장자교단이라고 하고, 가장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우리 총회만 해도 세습의 문제 때문에 세상에 부끄러운 속살을 드러내고 있고, 지나치게 정치화되고, 세속화되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칼뱅이 무덤을 박차고 나와 저를 향해, 우리 교회를 향해, 한국 교회를 향해 무서운 한마디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교회이냐?” 감히 그렇다고 답하지 못해서 부끄러웠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여기고 바른 목회자가 되고, 교회가 되도록 힘을 쓰겠다고 칼뱅의 검소한 무덤 앞에서 다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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