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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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솔하시는 박경수교수님과 오늘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담으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영성의 날!" 오늘 일정이 마치 영성훈련을 위한 날 같았습니다.
오늘은 중요한 세 군데를 탐방하는데 첫 번째 클뤼니 수도원, 두 번째 떼제 공동체 낮 기도회 참석, 세 번째 롱샹수도원 저녁 기도회 참석하는 것으로 잡혔기 때문입니다.
오늘 탐방하는 세 곳은 수도원 또는 기도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아마 제가 우리 교회 성도들을 인솔하고 종교개혁지를 순례한다면 코스에 넣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일단은 신학적 배경과 역사적 관계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일반 성도들이 단지 건물의 규모나 건축학적 위용만 볼 것이기 때문에 설명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떼제와
롱샹의 라틴어 찬양이나 다른 외국어 찬양 등이 입에 익지 않아 지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목회자라면 꼭 넣어야 할 코스라고 생각합니다.
아침 조식 후 첫 번째 탐방 코스로 브르고뉴 지방의 클뤼니 수도원을 찾았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참 복잡한 인과관계를 살펴야 하는 수도원입니다. 클로뉘 수도원 500m 전에
버스에서 내려 수도원을 향해서 걷는 길에 아주 큰 마장마술 경기장과 연습장이 있어서 정말 기름기가 멋지게 흐르는 멋있는 말들과 그 말을 탄 기수들을 보았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중계방송을 통해서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말을 타고 장애물을 넘는 경기장면을 보니 정말 멋있어 보였습니다.
클뤼니 수도원을 한 마디로 설명하라면 중세 기독교의 수도원들이 초창기 순수한 이상과 신앙을 잃어가면서 영적 분위기가 미신적 형태로 변해갈 때, 그리고 교황청과 성직자들,
기독교가 부패하고 타락해 갈 때, 주후 10세기에 수도원과 기독교를 개혁하고자 일어났던 새로운 수도원 운동의 근원지가 클뤼니 수도원이었습니다.
클뤼니라는 귀족이 베네딕트 수도사들이 마음껏 수도하면서 기독교를 정화시켜주기를 기대하면서 설립한 수도원입니다. 일단 수도원에 들어서면 그 규모에 입이 벌어집니다.
로마 베드로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10세기 당시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큰 수도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 재난들을 겪으면서 수도원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어도
지금도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수도원입니다.
성직자의 독신주의를 독려하고, 성직매매를 끊게 하고, 베네딕트 수도원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수도원 운동의 시작점이 클뤼니 수도원입니다. 훗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악연 때문에 황제가 카놋사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한 "카놋사의 굴욕"이라는 역사적 사건도 클뤼니 수도원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13세기부터는 클뤼니 수도원이 쇠락하면서 수도원 개혁의 주도권을 시토수도회라는 공동체에 넘겨주고 맙니다. 그렇게 쇠락해가던 클뤼니 수도원은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주체들에
의해서 1790년 해산을 당하고, 현재까지는 그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유적지로서의 건물만 남아서 관광객을 받고 있습니다. 아마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운동이 성공했다면
훗날 루터나 칼뱅, 츠빙글리와 비레 등의 개혁자들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도 아무리 새예배당을 짓고, 재정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고, 성도들의 수가 많다하여도 하나님 앞에서 바른 정신으로 개혁하는 신앙을 갖지 못하면 교회 자체가 소멸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쇠락은 한국 교회 전체에서 동시에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깨어 있으라!"
클로니 수도원에서 차량으로 20분 채 미치지 못한 곳에 떼제공동체(Taize)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제가 목회하면서 해마다 사순절 마지막 주간 고난주간이 되면 특별저녁기도회를
갖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때 한주간 부르는 주요 찬송이 떼제공동체의 찬양입니다.
신학교 재학시절, 학교수련회에서 단순하면서도 위엄있는 신앙고백이 담긴 떼제찬양을 부른 것은 영적 충격에 가까웠습니다. 나중에 꼭 목회에 적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감동을 받은 내용은 다른 것 아닙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통성기도나 방언기도, 박수치면서 큰 소리로 부르는 찬송 등에 아주 익숙합니다. 저의 청년시절 한국교회는 거의 그렇게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조용하게, 이렇게 단순한 가사로, 이렇게 짧은 찬송을 반복적으로 부르면서 은혜의 물결로 덮는지 놀라웠습니다. 그 흔한 설교 한마디
들어가지 않아도 찬송과 침묵기도만으로도 하나님은 충분히 충만하게 임재하시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을 현장에서 느껴보고 싶어 방문하고 싶던 곳입니다.
오늘 우리 일행은 이곳의 12시 30분에 시작된 낮 기도회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기도회 시작 전 마침 서울에 1년 머물면서 서강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약간 배운 장 다니엘(Jean
Daniel)이란 슬로바키아 출신의 수사를 만나 어설픈 한국어로 떼제의 스토리들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 수사와 개인적으로 대화하면서 몇 가지 궁금한 내용들을 묻고 답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떼제공동체가 주로 가톨릭을 통해서 소개되었기 때문에 가톨릭 아니냐면서 의문을 갖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분은 에큐메니칼에
편승한 이단 아니냐며 극단적으로 폄훼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공동체를 시작한 수도사 로제(F. Roger Schutz)는 프랑스 개신교회의 수사였고, 제네바의 개혁교회에서 학업을 한 엄연한 개혁교회측 인사입니다.
1940년 8월에 25살의 청년 로제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프랑스의 시골 마을 떼제에 와서 정착하고, 전쟁 피난민, 그중에서도 나치 독일의 점령지를 피해서 도망나온
유대인들을 숨겨주면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쟁 후에는 독일군 포로들도 받아주었습니다. 1949년 일곱 명의 형제들이 물질적, 영적 재산의 공유 등을 서약하면서 나눔의
실천을 위한 기도운동을 시작합니다. 지금도 떼제공동체 아래 마을에 있는 작은 가톨릭성당에서 시작했는데, J. 다니엘 수사에 의하면 개신교회 사람들에게 가톨릭이 성당을
내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합니다. 이번에 방문해보니 정말 작아서 50명 정도 앉으면 가득할 것 같습니다. 그 성당을 교황청의 허가까지 받아서 내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회에 소문을 듣고 참석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성당 위 언덕에 큰 공동체 예배처소를 짓고,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청년들과 순례객들을 받아서 기도회를 엽니다.
제가 다니엘 수사에게 현재 이곳의 관련 수도사들이 개신교회와 기타 교회의 비율이 어느 정도냐고 물으니 대략 50대 50 정도인 것 같다고 합니다. 다만 종파로 따지면 현재는
로제 원장의 뒤를 이은 2대 수도원장이 천주교 신부여서 그런지 가톨릭 수사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이들은 아침과 낮, 그리고 저녁 시간, 하루 세 차례 기도회를 갖습니다. 기도회는 흰색 가운을 입은 수도사의 입장으로 시작되었는데, 짧고 단순한 찬양을 반복해서 부르고,
그 찬송 중에 중간에 캐논 부분이 있는 곳은 각국 언어로 수사가 부릅니다. 한 노래를 부를 때 이곳에 참석한 나라의 신도를 위해 그 나라 언어가 잠시 나오는데, 한국에서 온
우리 일행이 있어서 "사랑의 하나님 찬미를 받으소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은혜 감사드립니다"라는 한국말 노래가 수사를 통해
나왔습니다. 기도회 후 마당에서 다니엘 수사를 만나 그 한국어 찬양을 다니엘 당신이 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 합니다. 큰 소리 아니어도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중간에 침묵으로 5-6분 기도하는 시간이 들어 있는데, 무슨 언어적 유희를 다해서 말하는 것보다 더 깊은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감동입니다.
직접 떼제 찬양을 부르면서 기도한 것이 이번 탐방의 큰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잘못 알고 있던 내용들을 수정한 부분도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일정으로 찾은 곳은 롱샹수도원(Ronchamp Chapel)입니다. 이곳은 수도원도 수도원이지만 건축학적 탐방을 위해 세계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많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20세기 최고의 건축가라고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롱샹을 건축했기 때문입니다.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로서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냥 르 코르뷔지에라고 하면 낯이 설지만, 우리나라 건축에도 그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습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제자가 그의 스승만큼 유명해진 일본의
안도 다다오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원주에 있는 뮤즈엄 산이 대표적인데 저도 방문해 보니까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도 작품이지만 이 미술관 자체를 보는 감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문을 연 서울 LG아트센터, 제주도의 본태박물관도 안도 다다오의 작품입니다. 우리 교인들도 많이 가는 제주도의 물의 교회로 알려진 방주교회는 안도 다다오의 제자인
이타미 준이라는 재일교포 건축가의 작품입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손자쯤 되겠지요.
우리 청북교회도 그 영향이 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 안도 다다오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도 건축을 할 때 콘크리트 노출공법을 많이 쓰게 되었는데, 우리 교회도 측면과 후면이
콘크리트 노출공법입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이지요.
롱샹은 정말 단순한 건축이지만 빛과 어둠의 조화, 교회 강단과 뒤의 야외예배당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구조, 작은 창문이지만 예배당에 맞게 비추는 빛, 실내에서 밝힌 촛불,
산 능선과 조화를 이룬 건물의 배치, 그러면서 예배당 안의 울림들 때문에 가톨릭교회지만(여성 수녀들의 수도원) 기독교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또 건축을 공부하는 학도들의
걸음을 맞는 곳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저녁 기도회 전 예배당 안에서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20분 정도 눈을 감고 묵상을 하는데 마음에 감동이 왔습니다.
그리고 저녁 기도회 시간 약 30분 정도 불어와 라틴어로 진행되어 의미를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노인 수녀들의 영성 가득한 기도회가 언어를 넘어 가슴에 닿았습니다.
그렇게 오늘 아침 스스로 이름을 붙인 "영성의 날" 순례 일정을 마쳤습니다.
오늘 세 곳을 순례하면서 느꼈습니다. 개혁을 하다가 쇠퇴한 클뤼니 수도원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날마다 갱신되지 못하면 결국 우리도 하나의 유적지로 남고 말겠다는 위기감
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왜 위기를 맞았을까? 통성기도가 부족해서? 찬송을 작게 불러서? 설교와 신학이 부족해서? 아닙니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들을 다 내놓아가면서 너무
요란한 교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기도 해야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침묵하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 "귀 있는 자들"에게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말이 난무하면서 교회와 교인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공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많은 일을
벌이면서(저도 그렇게 목회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미처 묻지 못하고, 사람들의 기분과 감정을 맞추는데 열심을 내지 않았나 반성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침묵하는 중에 마지막으로 부른 떼제 찬송이 늦은 이밤에도 귀와 가슴에 울리고 있습니다. "주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주님 나라 임하실 때." "Jesus Remember me. When
you come into your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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