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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지순례 둘째날
2023-06-22 06:04:22
박재필목사
조회수   210

종교개혁지 탐방 둘째날, 오늘도 장거리를 돌아서 로잔의 레만호수 곁에 있는 숙소에 들었습니다.

어젯밤 잠을 잔 수도원은 '카펠수도원'(Kloster Kappel)이었는데, 역사가 800년이 넘는 수도원입니다.

오늘 아침은 식사 후에 첫 탐방지로 어제 돌아보지 못한 수도원 안팎을 돌아보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들은 재밌는 소식은 이곳 카펠수도원에서 하룻밤 잠을 자며

머문 최초의 한국인들이 우리 일행이라고 합니다. 외부에 거의 개방을 하지도 않아 외국인들이 와서 머물 일이 거의 없는데, 이번에 방문한 멤버들이 전원

신학생과 목회자라고 했더니 승인이 나서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자 츠빙글리가 전투 중 전사한 기념비가 있어서 가까운 숙소를 찾은 것인데,

그런 진기한 기록을 갖고 머물렀다고 설명을 들으니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이곳 카펠수도원은 종교개혁 이전에는 당연히 가톨릭교회의 수도원이었고, 일과 수도생활을 병행하는 베네딕트수도원의 전통을 따르려고 했던 수도원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에는 개혁교회의 수도원으로 자리 매김을 했고, 츠빙글리의 후계자로서 취리히 그로스뮌스터에서 목회를 했던 불링거(Bullinger)가 머물면서

신학생과 목회자 훈련을 했었던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츠빙글리를 중심으로 해서 성경을 연구하던 모임을 프로페차이, 즉 예언자 성경 공부라는 모임이었는데, 

이 모임이 확대되어 신학교가 되고, 그 신학교가 발전하여 오늘날의 세계적 명문대학인 취리히대학교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그 취리히의 프로페차이가 1525년에 시작되었는데, 이곳 수도원에서는 불링거가 취리히보다 2년 앞선 1523년에 성경공부를 시작하였다면서 이곳이 원조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가 먼저 시작하였든 우리로서는 즐거운 논쟁입니다.

그렇게 우리 개혁교회는 성경과 인문학 등을 공부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도 피하지 말고 공부하는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면

참 좋겠습니다. 수도원답게 여전히 손으로 종을 치는데, 할아버지로부터 대를 이어서 손자들이 들뜬 마음으로 종을 치는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하여 부러웠습니다.

교회 예배당은 수도원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에다가 개혁교회의 단순함이 함께 어우러져서 성찬상과 말씀강단이 아주 단순하게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약 600m정도 떨어진 곳에 츠빙글리가 전사한 것을 기념하는 터가 있어서 우리 팀원들이 함께 걸어가서 츠빙글리의 삶과 신앙고백, 그리고

마직막으로 목숨까지도 드린 그 헌신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 한적한 시골마을에 동양인들이 찾아와 걷는 모습을 마을주민들이 매우 신기해하면서 봅니다.

관광을 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올 곳이 아닙니다. 수도원이 있고, 우리에게 개혁교회를 만들어 전승한 츠빙글리의 순교적 삶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이른 줄로 믿습니다.

 

카펠수도원을 떠나 1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달려서 이르른 곳은 자펜빌이라는 한적한 마을이었습니다. 이곳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고 칭송을 받는

칼 바르트가 목사로서 10년간 목회를 했던 자펜빌교회를 방문하려고 찾았습니다. 칼 바르트 목사는 이곳에서 10년간 목회를 하면서 당시로서는 산업화 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급진적이거나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있어서 일각에서는 자펜빌의 붉은 목사

(이념적으로 공산주의자란 뜻)라는 비난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칼 바르트는 장신대에서는 필독해야 할 신학자이지만 한국교회의 보수진영에서는 지금도 

바르트의 책을 읽지 못하게 하고, 바르트가 유아세례를 거부했다는 것 때문에 이단시하는 교단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르트는 자펜빌 목회 기간 동안 낙농업을 하던 주민들이 공장의 노동자로 가면서 겪는 아픔들과 그에 대한 보상 등의 문제로 투쟁하는 마음으로 목회했기에 

과격한 이론을 끌어 썼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로마서 강해 1판과 2판을 내면서 소위 정통주의적인 보수 신학을 발표하고 수행합니다.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 두 번째 판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역사가들은 '진보진영에 떨어진 핵폭탄'이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보수적인 신앙의 대변인이었습니다.

 

자펜빌을 떠나 도착한 곳은 뇌샤텔이라는 도시에 있는 종교개혁자 기욤 파렐이 목회했던 교회였습니다. 더운 날씨였다가 비가 내리는 중에 높은 언덕을 오르는데,

시원해서 참 좋았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뱅이 종교개혁을 이끌기를 아직 머뭇거릴 때 그를 맨앞의 개혁가로 끌어낸 분이 바로 파렐입니다.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아마 파렐이 없었다면 칼뱅이 종교개혁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고, 개혁교회가 세계화 되는데 큰 방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칼뱅이 파렐에게 이끌림을 받았을 때 칼뱅은 파렐이 야단을 치는 소리가 마치 하나님의 진노의 목소리 같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예배당에서 뜻밖의 행운을 만났습니다. 제네바대학 음대생들이 공연을 앞두고 성가곡 리허설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천상의 소리 같이 아름다웠습니다.

맨 마지막에 예배당 밖으로 나오는데 동양인 단원이 나오면서 한국말로 한국에서 오셨냐고 묻기에 그렇다 했더니 얼마나 반가워하는지요.

자기는 서울신대 교회음악과를 나와서 이곳으로 유학을 왔는데, 갑자기 한국말이 들려서 너무 반가워 뛰어나와 인사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인이 잘 오지 않는 

뇌샤텔에 어쩐 일이냐고 묻기에 종교개혁지 왔다고 대답을 했더니, 제대로 찾아오신 것이라며 환영해 주었습니다.

뇌샤텔에서 오르브라는 작은 도시에 갔습니다. 이곳은 종교개혁자 피에르 비레가 목회하던 교회와 그가 출생한 생가가 있어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가 문화재로서 내부 수리 중이라 들어갈 수 없어서 구경하지 못하고 외관만 봤습니다. 그리고 그가 출생한 인근의 생가는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어서 건물 밖에만 피에르 비레가 출생한 집이고, 살았던 집이라고 소개를 하는 명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유럽에 오면 그런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 살던 집이라도 다른 이가 살면 명패를 붙여서 역사적인 기록은 남기지만, 그 역사 속에서 또다른 인물이

역사를 만들면서 살아갑니다. 문화재급의 집에 수백 년 후에 새로운 인물이 살면서 역사는 회전을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살면서 오늘 나의 삶의 자리에서 어떤 역사를 만들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역사적인 삶을 살도록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많이 걷고 더운 날, 비가 오는 날씨였지만 존재의 근원을 돌아보게 하셨기에 참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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